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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행동이다》에필로그 - 사랑을 실천할 수 있어 행복했던 삶을 되돌아보며
19-05-20 09:50 1,795회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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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사랑을 실천할 수 있어 행복했던 삶을 되돌아보며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대학 선배님이신 윤동주의 ‘서시’의 구절이다.
 도대체 어떻게 살았기에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 할 만큼 순수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윤동주 시인은 내가 넘보지 못할 만큼 투명한 영혼을 가져서 부러우면서도 닮고 싶은 분이다.


 종교를 가진 적이 없었던 나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성경 속의 ‘선한 사마리아인’이나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의미를 깨달으면서 살아가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돌이켜보면 선한 삶을 산 것은 내가 살아가는 동안 가뭄에 콩나듯 어쩌다가 한 번씩 일어나는 일이었고, 나머지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평범한 시간이 대부분인 하루하루를 보냈으며, 결코 선하다고 볼 수 없는 생각과 행동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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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정갈하면 도처에 연꽃이 피고 흐르는 물은 썩지 않고 행동하는 이는 늙지 않는다. 
회사 여직원 부친이 준 선물이다



여기서 고백하건대…

어릴 적 부모님 말씀을 지지리도 안 듣고 공부는 뒷전이고 어머니 호주머니에서 돈을 허락도 없이 빌려서는 라디오, 무전기를 만드느라 뒷골목 고물상이란 고물상은 모두 섭렵하고 다녔었다.(허락받지 않고 빌린 돈은 훗날 기업경영하면서 벌었던 돈으로 이자까지 쳐서 다 갚았다. 속 썩이신 마음까지는 다 못 갚았지만…..


가부장적 분위기의 가정에 태어나서 자라다보니 남성 우월주의가 남아있어서 아내나 형제들에게도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큰소리를 치는 경우도 종종 있었고…

가까운 친인척에게 가슴에 못을 박는 생각과 행동을 했던 적도 있었다. 그 중에 한 가지로, 내가 대학에 합격하면서 한 살 터울의 누님이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눈물을 흘리면서 대학을 중퇴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 정신적 고통을 조금이나마 헤아려주지는 못할망정 여자라면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것으로 알았다.


경영자로서 직장에서 역할을 충분히 못하는 직원에 대하여 가슴 아파하면서도 내보낼 수밖에 없었던 일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군 생활에서는 상급자와의 다툼으로 인하여 그때 그 시절의 기준으로 봤을 때는 하마터면 남한산성 형무소로 직행할 뻔한 일도 있었다. 가까운 친구들이 보내준 야동을 보면서 낄낄대기도 곧잘 하고…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고백 할게 있다.

 사귀던 여자 친구와의 첫 키스 때 여자 친구의 부끄러움으로 인한 작은 거부의 몸짓을 무시하고 반강제로 키스했었는데 요즘의 기준으로는 딱 ‘Me too!’에 걸려서 성범죄자가 될 수도 있었다. 다행히 그 여인이 나를 고발하지 않았고, 지금은 흐르는 강물처럼 한 이불 덮고 살면서 같이 늙어가기에 범죄 요건 성립은 안되겠지만…

 그처럼 선함과 선하지 못한 말과 행동이 뒤섞여 있는 모습이 바로 ‘나’라는 인간의 진면목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삶이 나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보호해주었고, 몇 번이나 황천길로 갈 뻔 했었는데도 무사히 지켜줘서 지금의 내가 이자리에 아직도 서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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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30주년 근무 포상휴가로 방문한 미국 요새미테 레드우트 파크에서 포즈를 취한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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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요새미테 하프돔을 배경 삼아 아내와 함께



 그런 부족한 인간이 ‘사랑’이란 주제로 이 책을 쓴 배경을 굳이 대자면 이렇다. 요즘 신문을 들추면 끔찍한 사건들이 너무나 많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일어난 일만 해도 과천에서 발생한 토막 살인사건, 감정조절 장애로 부모님을 살해한 사건, 친구 딸에 대하여 성적충동을 억제하지 못해서 벌어진 끔찍한 일, 힘 있는 자가 상대적 약자에 대해 벌이는 인격적 모욕과 성추행, 미국에서 벌어지는 총기 난사사건, 거기다가 범죄피해자 지원센터 위원을 맡으면서 심사과정에서 서류로 대했던 끔찍한 사건 등등… 차라리 눈과 귀를 막고 싶을 때가 많았다. 거기다가 정치인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머리통이 터지도록 싸우면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어떤 모습인지 국민들에게 확실히 각인시키는 꼴도 보고…


 생각해보면 32살에 위암수술까지 받았는데도 그 두 배의 나이가 되도록 아직 죽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서 아내와 자식들에게 가장 역할도 무난히 한 것 같다. 돌이켜보니 29살에 창업해서 아직 망하지 않고 기술혁신 강소기업으로 키워내 일자리 창출에 조금은 기여를 했고, 협회장으로서 국가와 기업에 봉사도 했고, 멀리 아프리카 케냐의 타나리버 지역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의 시나붕 화산 폭발로 고통 받는 지구촌 가족들에게 조그만 후원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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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타나리버 지역 우물 통수식



 신혼 초에 병마로 인한 빚더미에 죽음의 그림자가 연속되고 있었지만 단언컨대 나와 아내는 단 한 번도 죽음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우리 가족이 죽음에 이르는 병을 이겨낼 수만 있다면 그까짓 빚도, 다시 마련해야 할 집도, 적자가 나는 회사도 모두 해결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작년 11월은 내가 위암수술 받기 전에 살았던 삶의 시간과 수술 받은 후에 살았던 시간의 길이가 역전되는 시점이었다.


 요즘에는 자조섞인 말로 우리나라를 자살공화국이라 부르곤 한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OECD국가 중 1위가 된 지 오랜데 그 이유가 지나친 압축 성장으로 상대적 빈곤감이 만연한 데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보는 관점은 상대적 빈곤감도 원인의 하나겠지만 사회의 지식층이나 지도자 나아가 연예인들의 잦은 자살이 불을 지핀 것이 라고 생각한다. 마치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출간된 이후 유럽 전역에 자살이 유행이 되었던 것처럼…


 그분들을 생각하니 오죽하면 자신의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죄값을 치르려고 했겠는가 싶어서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우리 가족이 세상에서 버림받은 것 같은 재앙에서도 이겨내려고 발버둥쳤던 이유는 무조건 살아서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해 내고자 함이었다.

 설사 백보 천보 양보하더라도 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자살을 미화하거나 영웅시하는 풍조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삶에 있어서 최고의 선은 생명존중과 사랑일진데 실천의 첫걸음은 자신의 생명부터 지키는 것이고 혹 잘못을 저질렀다면 살아가면서 조금씩이라도 갚아나가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TV나 인터넷 그리고 신문에서 툭하면 끔찍한 자살소식을 대하곤 하는 젊은 영혼들에게 ‘생명존중’ 이야기를 들려주어서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음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허구나 창작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 아니라 직접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한 생명존중의 이야기를 통해…

글을 조금은 더 잘 써서 더 멋진 책을 잘 만들고 싶었는데 기업체 대표이사에 이노비즈 협회장과 ASEIC(중소기업 친환경 혁신센터)의 이사장까지 맡다보니 글 쓸 시간이 제대로 나지 않아서 억지로 틈을 내어 쓰다 보니 너무도 딱딱하고 보잘 것 없는 글이 되고 말았음을 이해 부탁드린다.

 거기다가 미투(Me too)라는 사회적 분위기도 한 몫을 하여 옛날이라면 편하게 웃으며 넘길 수 있었던 가벼운 농담까지도 엄격한 잣대를 대서 삭제시키다보니 더욱 그렇게 되었다. 다시 한 번 더 말하건대 나는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는 보통 인간일 뿐이다. 이 나이에도 길에서 멋진 여인을 보면 나도 모르게 눈이 돌아가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 속으로는 멋진 사랑도 상상해본다. 

 독심술을 가진 사람이 나의 상상하는 마음을 들여다보고 이를 만천하에 공개한다면 나는 즉시 아내에게 오른뺨을 맞으면서 왼뺨도 내놓아야 하는 사람이다(감사하게도 아내가 상상하는 정도까지는 이해해줘서 아직 뺨은 안 얻어맞고 살아가지만…).


 20대 때부터 죽음의 그림자와 함께 했던 우리 부부에게 ‘행복’이란 밤늦은 시간에 함께 풀벌레 소리 들으며 잠자리에 드는 일이며, 오늘 하루 집앞 정원에 핀 예쁜 꽃을 보고 새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 일이다.

 아들과 며느리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거나 손녀의 재롱과 울음소리를 듣는 일 외에는 특별할 것 없이 보낸 평범한 하루에 감사해 하는 일이다. 주말이면 소중한 벗들과 함께 산과 암벽을 오르고 때로는 오지로 배낭여행을 떠나거나 그 과정에서 지구촌 이웃들에게 작은 봉사를 하며, 이 모든 것에 감사한 마음으로 임하는 일이다.


 따분하고 보잘 것 없는 책을 끝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주신 독자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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