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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칼럼



《사랑은 행동이다》어머니의 병상에서
19-04-16 14:10 1,839회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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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어머니 그리고 사랑

어머니의 병상에서


 

어버이 살아실 제 섬길 일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찌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 이뿐인가 하노라.

 

송강 정철의 어버이에 대한 시조입니다.

어떤 가수가 노래로도 불렀습니다.

어머니!

과연 저에게 있어서 어머니의 존재란 어떤 모습입니까?

 

 어렸을 때 막대 사탕 입에 물고 엄마 치마를 잡고 따라가면서 행여 치마를 놓치면 엄마를 영영 잃어버릴 것 같은 불안감에 한 손에는 사탕 들고 빨면서 한 손으론 어머니 치마를 잡고 갈 때 느꼈던 그런 모습 입니까?

 입으로 젖을 빨면서 남은 조막손으로 나머지 한쪽 젖을 조몰락 조몰락거릴 때의 뽀얀 가슴에 젖이 가득 든 그런 모습일까요?

 입학시험 날 유난히 추운 고사장 앞에서 추운 줄 모르고 기도하던 그런 모습일까요?

 못된 짓을 한 자식에게 화가 나서 회초리로 때리다가 퉁퉁 부은 종아리가 안쓰러워 자식을 끌어안고 함께 눈물 흘리시던 그런 모습일까요?

 어릴 때 어머니는 우리의 희망이었습니다.


 한쪽이 기울어도 많이 기울어진 부모님 틈바구니에서 우리는 어머니가 있음에 가정이 그나마 유지가 되는 그런 가정에서 늘 불안 속에 이리저리 눈치를 봐가면서 어린 시절을 지내왔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우리 5형제가 나름대로 사회에 일익을 담당하며 열심히 살게끔 해놓으셨습니다.

 신혼생활 3개월 만에 제2차 대전 학도병으로 끌려가신 아버지는 해방되어도 돌아오시지 않고, 필리핀 전선에서 돌아가신 것 같다는 소문을 듣고도 20대 초반의 꽃다운 나이에 여생을 혼자서 사시기로 결심 하셨던 어머니셨습니다.

 해방되고도 한참이 지나서 아버지가 돌아오셨다가 불과 몇 달 만에 6·25 전쟁이 일어나서 참전하셨을 때도 그냥 그렇게 혼자 사셨습니다.

 채소 보퉁이를 머리에 이고 대구의 원대시장 귀퉁이에서 좌판을 펼치고 지나가는 손님들에게 정구지 한 묶음 사달라고 애원하던 모습 일때도 있었습니다. 일수 아줌마의 모습이 우리 어머니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바람 불어 추운 겨울 우리 집 근처의 허물어져 가는 빈집에서 덜덜 떨며 보내는 거지에게 주려고 더운물을 끓여서 찬밥 덩어리와 한두 가지 반찬을 소반에 담아 가시던 모습은 저에게 또 하나의 어머니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어제는 수술 후 고통으로 끙끙 앓고 계시는 어머니의 옆에서 밤을 지새웠습니다.

 어머니의 고통을 옆에 있으면서도 조금도 덜어주지 못하는 자식입니다. 이젠 얼굴의 주름살이 너무나 많아져서 그 주름살 주름살에 어머니가 살아오신 삶의 구비를 넣고 또 넣어도 한쪽 부분엔 못 채운 빈 주름이 남아 있을 정도로 늙으신 어머니입니다.


 머지않은 어느 날 문득 우리 곁에서 바쁘게 떠나가실텐데 살아계신 어머니에게도 효도하지 못하고 늘 바쁜 척하는 못난 자식입니다.

 이제 젖 빨며 주무를 뽀얀 가슴도 남아 있질 않고 꼭 잡고 갈 치마도 어머니에겐 없습니다.

 무거운 채소보퉁이를 머리에 이고서도 먼 거리를 걸어가던 다리는 이제 관절염이 심해져서 노인정 가기도 불편한 모습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동안 몸과 마음을 다하여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다하셨기에 우리가 이만큼 성장한 것입니다.

 어머니!

 당신의 병실에서 이 아들은 훌륭한 어머니가 계심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마음속 깊이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ㆍ이 글은 간암으로 마지막 투병을 하고 계시는 어머니의 병실에서 간병을 하면서 밤에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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