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news

CEO 칼럼



《사랑은 행동이다》암벽등반 입문 그리고 아침가리 계곡 트래킹
19-03-18 09:56 2,884회 0건



3556716831_1542955802.6279.jpg

제3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암벽등반 입문 그리고 아침가리 계곡 트래킹


 

 “암벽 기어 올라가는 꼬락서니 보니 아무래도 암벽등반은 그만하고 몸으로 때우는 포터(‘짐꾼’을 의미함. 히말라야와 같은 거벽 등반 시 베이스캠프까지 짐을 지고 올려다 주는 전문 짐꾼)나 해라.”

 대학 1학년의 가을이 깊어가던 11월 초에 선배들과 도봉산 선인봉 전면 암벽코스를 올랐는데 산 선배들도 그 코스는 등반을 처음 해보는지라 생각 밖으로 시간이 많이 걸렸다. 정상에 도달하기도 전에 늦가을의 짧은 해는 어느새 선인봉 꼭대기에 걸리더니 급기야는 서쪽으로 해가 넘어가버렸다. 주변이 캄캄해지다보니 처음 가보는 암벽 코스라서 어디로 올라가야할지 방향 설정이 어려워져서 사고 위험이 커졌기에 등반을 중지하고 올라갔던 코스에 자일을 걸어서 역방향으로 어둠을 더듬어서 암벽을 조심조심 하강하는 것으로 방침이 정해졌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나의 소심하고 겁 많은 성격을 바꾸고자 산악회의 문을 두드렸던 나였기에 암벽 등반이라고는 그동안 기껏해야 4~5번 밖에 하지 않아 초보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의 야간 자일 하강은 극도의 공포심을 느꼈던지라 선배 형이 보기에 내가 겁이 나서 벌벌 떨면서 내려가는 꼴이 한심했던 모양이었다.



3556716831_1552870704.4359.jpg

•암벽등반 중 자일 하강



 어쨌든 캄캄한 밤의 적막 속에 무사히 하강을 완료한 후 도봉동으로 내려오는 길에 나로 인하여 엄청 가슴을 졸였던 선배 형이 뱉은 말을 되새겨 보았다. ‘너는 앞으로 암벽은 하지 말고 일반 등산로나 다니고, 힘은 좋으니까 선배들이 암벽 오를 때 암벽장비 져다 올리는 일이나 해라.’라는 뜻이었다.

 조성모의 노래 ‘가시나무’의 가사에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라는 구절이 있는데 ‘성명기’라는 나 자신 속에도 나 스스로가 통제할 수 없는 또 하나의 내가 있는 것 같다. 즉,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데 나 스스로가 이 상황을 극복하지 않으면 다른 방법이 전혀 없거나 심한 모욕을 받은 경우에는 평상시의 나 자신(소심하고 겁이 많고 내성적인 인간)이 아닌 또 하나의 나를 접하게 된다.

  그렇다고 미국 드라마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 헐크’처럼 외모가 바뀌거나 밖으로 화를 분출하는 것은 아니고 평소의 부끄럼 많이 타고 소심함과 겁이 많은 모습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어려운 상황과 정면충돌하는 또 하나의 ‘내’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고2 때까지 공부는 뒷전이고 라디오, 무전기, 오디오나 만들다가 3학년 때 죽어라 공부해서 원하는 대학에 입학한 것, 대학 4학년 때 날아온 여자친구를 놓치지 않으려고 도서관에 살면서 공부해 서 학점부족을 극복한 것, 29살에 몇 백 만원으로 창업 한 것, 아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 아들의 전 과목 가정교사 한 것 등)


 그날 그 순간 나는 선배 형의 빈정거림을 가슴에 담으면서 내면 속의 나와 약속했다.

 기필코 확실한 암벽 등반가가 되어서 선배 형 앞에 우뚝 서자고…


3556716831_1552870817.5241.jpg

 •선인봉의 장관. 왼쪽 경사면이 선인봉 전면 암벽이다.



 그날 이후 나는 주말 뿐 만아니라 주중에도 오후에 수업이 없으면 산 친구와 같이 암벽에 매달리곤 했다. 한번은 가을이 무르익은 10월의 어느 날 평일 오후수업이 없는 시간을 이용하여 오르기 시작한 북한산 인수봉에서 낮이 짧았던 까닭에 등반 도중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때부터 헤드랜턴을 켜고서 야간 암벽등반을 하던 중 저 아래로 내려다보이던 서울의 밤풍경이 맑은 밤하늘에서 본 별빛처럼 집과 가로등과 자동차가 만들어 내는 불빛이 별처럼 아름다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2학년 여름 방학 때는 인수봉과 선인봉 아래에서 곰팡내 풍기는 텐트에서 20여일씩 지내면서 근교 암벽을 오르고 또 올랐다.(산과 암벽에 미치는 바람에 1,2학년 때 F학점을 잔뜩 받아서 학점부족으로 하마터면 4년 만에 졸업을 못할 뻔 했다.)

 내 속의 내가 현실속의 나를 대신하여 작동하면서 얼마나 제대로 산에 미쳤는지 선배 형에게 도전장을 내밀고서 11개월만인 2학년 2학기가 시작되면서 산악회 회장을 맡았었다.

 그렇게 좌충우돌하면서 학창시절을 보냈는데 어느새 세월이 흐르긴 많이도 흘렀나보다.

 나를 담금질하던 선배 형도 나도 어느새 환갑이 넘은 나이가 되었으니 이제는 같이 늙어간다는 표현이 적당하리라 싶다.



3556716831_1552870939.4577.jpg

•설악산 적벽. 비선대 앞 수직암벽이다.



3556716831_1552870996.8573.jpg

•도봉산 선인봉 암벽등반


3556716831_1552871085.8087.jpg

•북한산 만경대 리지




 2년 전 강원도 아침가리 계곡 트래킹을 산악회 OB 선후배들과 같이 갈 기회가 있었다. 그동안 선배 형 중에서 미운 정 고운 정이 들면서 누구보다도 더 가까운 사이가 된 선배 형(나를 포터하라고 망신 준 선배)도 같이 갔었고 내가 산에 갈 때면 만사 제쳐놓고 나를 따라오는 아내도 함께 한 산행이었다.

 아침가리를 가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방동약수 옆의 시멘트 포장이된 임도 길로 고개 마루까지 40여분 걸어올라 간 후 다시 반대편 임도로 40여분 내려오면 계곡에 걸린 다리(조경동교)가 나타나는데 이 지점에서 하류로 등산화와 등산복을 입은 채로 물속에 첨벙첨벙 빠지면서 계곡을 내려온다.

 그런데 길고 긴 장마가 끝난 직후여서 계곡물은 그동안 수십 번 오면서 봤던 아침가리 계곡이 아니었다.  크게 불어난 수량이 계곡을 건널 때마다 긴장하게 했고 하류로 내려갈수록 수량은 점점 더 많아져서 급류를 이루고 있었다.

 중간에 계곡을 건너야 할 때는 위험구간마다 로프를 설치해서 안전을 유지하면서 건넜다.

 그런데 아침가리 협곡에서 제일 마지막 구간에서 물을 건너려고 하니 계곡은 그동안 내린 장마 비와 하류로 가면서 이 골짜기 저 골짜기에서 흘러들어온 물로 인해서 상당히 위험한 급류를 이루고 있었다.

 미리 준비해간 로프를 계곡을 가로질러서 설치하고는 한 명씩 등반용 안전벨트와 안전고리(캬러비너)로 몸을 로프에 확보시킨 후 조심스럽게 건넜다.

 겁이 많은 아내는 나와 같이 물길을 무사히 건넜고…



3556716831_1552871122.5277.jpg

•폭우로 급류가 된 아침가리 물길을 아내와 횡단하며



 그런데 학창시절에 나를 말로 괴롭혔던 바로 그 못된 선배 형은 안전장치로 몸에 연결하지 않고 그냥 로프를 손으로 잡고 물을 건너기 시작했다.

 앞서 후배들이 물을 건너는 것을 보면서 이 정도면 안전장치 없이 그냥 건너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산을 대하면서 내가 얻은 교훈은 ‘사고는 항상 방심이나 자만에서 비롯된다.’라는 진리이다.

 북한산 원효봉에서 물에 젖은 암벽을 쉽게 생각한 다른 팀 등반자가 하마터면 염라대왕 앞으로 직행할 뻔했던 사건(‘원효봉 리지등반과 감사하는 마음’ 참조)도 바로 자만에서 비롯되었다.

 물살이 세고 수심이 제일 깊은 위치에서 선배는 물의 거센 힘을 버티지 못하고 로프를 놓쳐버렸다.

 그런데 우리가 계곡을 건너는 곳에서 불과 10미터 남짓한 하류부터는 수심도 훨씬 깊어지면서 물이 급하게 소용돌이를 치고 있었다. 따라서 ‘아차’ 하는 순간에 대형사고가 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보고 있던 후배들이 기겁을 했다.

 그 순간 나는 생각할 겨를이 없이 무조건 물속으로 뛰어들어서 떠내려가는 선배의 팔을 낚아챘다.


3556716831_1552871246.2728.jpg

•선배가 급류에 휩쓸리는 순간에 내가 팔을 나꿔채는 장면. 후배가 찍었다.



 그러자 급류는 우리 두 사람을 바람개비처럼 물속에서 두 세 바퀴 회전시키기 시작했는데…

 정말로 운 좋게도 우리는 물의 힘에 의하여 회전하면서 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우리 스스로 빠져나왔다기보다는 운명이 우리 삶을 지켜주었다는 표현이 적당할 듯했다.

 수십 년간 후배를 지켜봐주시던 산 선배 형이라서 내 형제 못지않게 소중했었기에 선배를 그대로 물속으로 떠내려가도록 둘 수가 없다는게 순간적인 나의 판단이었다.

 운 좋게 물 밖으로 밀려난 이후에도 쿵쾅거리는 내 심장이 진정되기까지는 한참동안의 시간이 걸렸다.

 아내가 지켜보는 가운데서 행했던 무모한 행동에 대하여 아내는 나에게 한마디도 잔소리를 하지 않았지만 계곡을 내려오면서 아내에게도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가느다란 로프에 묶여서 함께 땀 흘리며 암벽을 올랐던 선후배는 친형제 못지않은 소중한 존재이기에 또다시 그런 상황이 발생해도 나는 똑같은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3556716831_1552871268.2776.jpg

•한 여름계절의 계곡 트래킹



 이번 여름의 더위가 한반도에서 온도가 계측된 111년 만에 최저기온 이라고 한다.

 이런 더위엔 아침가리 계곡 물길 걷기가 피서로는 최고인데 이번 주말에 못된 선배 형에게 같이 가자고 전화해 봐야겠다.


 *영화 히말라야를 보신 분들은 등반대장(허영호 대장)이 후배들(박무택, 백준호)을 담금질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다양한 방법을 쓴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훈련시키면서 나오는 장면들은 다소 과장이 심하긴 하지만 암벽에서나 빙벽에서의 작은 실수 또는 장비를 다루는데 미숙함은 생사와 직결되기 때문에 훈련소 못지않을 정도로 엄격하게 훈련을 시킨다. 글 속에 나오는 선배 형도 그분의 방법으로 나를 담금질 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고 그 선배 형의 담금질 끝에 오늘의 내 모습이 여기에 있다.

*선배 형 중매하기

암벽등반 실력 없다고 나를 괴롭혔던(?) 선배 형이 서른이 넘어서도 장가를 못가고 노총각으로 늙어가고 있기에 아내와 상의해서 아내의 대학 선배 중에 매력적이고 심성도 착한 글래머 여인을 소개 해줬더니 바로 찰떡궁합이 되어서 지금까지 한 집에서 아들딸 낳고 잘 먹고 잘 산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