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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칼럼



《사랑은 행동이다》아버님! 저도 등산 따라 갈래요
19-01-28 15:59 1,944회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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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사랑의 힘

아버님! 저도 등산 따라 갈래요




 중소기업 단체 회장을 맡으면서 첫 번째 생각했던 것이 어떻게 하면 성공한 기업체 CEO들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서 글로벌 진출과 중견기업으로의 도약, 그리고 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었다.

 물론 따지고 보면 기업 자체의 성장이 자연스럽게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것이지만, 요즘 청년 실업 문제 등의 일자리 문제가 사회적 이슈이니만큼 일자리 창출은 기업들의 사회적 사명이라 생각할 면도 많다.


 취임사에서 ‘혁신 그리고 따뜻한 동행’을 강조한 것도 그 이면에는 혁신을 통한 기업의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통한 따뜻한 동행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그러자면 우선 기업인들을 강하게 결속시키는 것도 협회장의 할 일 중의 하나였다. 경험으로 보자면 사람을 결속시키는 데 등산만한 게 없다. 그래서 이노비즈 기업인들을 따뜻하게 결합시키려고 등산모임을 만들었다.

 기업인들을 묶어서 서로의 체온을 느낄 수 있게 되면 융복합 비즈니스가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로의 체온을 느끼는 ‘따뜻함’을 위해 실제로 등산뿐만 아니라 융복합, 독서토론회, 역사기행, 해외 배낭여행, 합창단, 골프 등의 여러 소모임을 만들었다. 그 전에는 없던 모임이 만들어지면서, 기업인들은 동료의식들을 느끼면서 강한 결속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루는 경복궁역을 출발해서 인왕산과 북악산을 거쳐서 숙정문으로 내려가는 코스를 택하여 등산과 더불어 역사의 숨결도 함께 느껴보는 산행을 계획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산에 갈 때면 빠지지 않고 늘 함께 따라나서던 아내는 아코디언 모임에서 경로당 봉사활동을 가는 바람에 함께 하질 못했고 결혼한 둘째 아들은 대학원 면접시험 치르는 날이라서 새벽부터 면접시험에 대한 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결국 나 혼자 산행에 참석하려고 주섬주섬 배낭을 꾸리고 있는데 한집에 살고 있는 며느리가 “아버님! 저도 등산 따라갈래요.” 하면서 나서질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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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와의 인왕산 성벽길 산행


 며느리의 친정 부모님은 두 분 다 교편을 잡으셨는데, 우리 부부와 첫 상견례에서 막 시집가는 딸에게 “어른들이 바로 분가하라고 하더라도 시집에서 최소한 몇 달은 같이 살면서 가풍도 익힌 다음에 분가하더라도 하라.”고 이야기 하셨다. 그 말씀에 며느리는 두 말 않고 시부모가 사는 집에 들어와서 살았던 엄친아(엄친며느리?)다. 그렇게 한 집에서 함께 몇 달을 같이 지낸 후 아내와 상의해서 부근에 조그만 아파트를 전세로 얻어 줄까 생각하던 중에, 아들 내외는 훗날 자기들이 아기를 낳으면 아파트보다 전원주택의 잔디밭에서 뛰어 놀게 하는 것이 더 좋겠다면서 우리 부부에게 제안하기를 “저희들이 부담되지 않으시면 한집에서 같이 살고 싶다”라고 하는 바람에 지금까지 같이 살게 되었다.


 아들 내외가 우리에게 그냥 같이 사는 것도 아니고 아들은 아들대로 직장에 다니고 있고 며느리는 창업(얼마 전 Start-up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을 해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는데다가 늙은 시부모와 같이 살다보면 분명히 힘이 들어서 언젠가는 나가겠다고 하겠지 싶어서 그때까지는 같이 살기로 했다.

며느리는 성격이 워낙 낙천적인데다가 애교도 많았다. 아내도 말썽꾸러기 아들 둘만 키웠지 딸을 키워보지 못했기에 며느리를 대하는 태도가 남달랐는데 며느리의 애교도 한몫 했으리라 싶다. 평일에는 아내도 회사에서 무역 및 전산업무를 담당해서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에 집에 오고, 주말이면 남편을 따라 등산이나 여행을 가든지 혹은 아코디언 봉사활동을 했기에, 집에 있는 날이 거의 없었다. 때문에 아들 내외와 한집에 살아도 아침 식사시간 외에는 얼굴을 대할 시간도 많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서로가 특별하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지냈고, 어느새 여러 해동안 한 집에서 같이 살고 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배낭을 메고 집에서 전철역까지 걸은 후 다시 전철을 타면서 이런 이야기 저런 세상살이, 비즈니스, 창업 이야기를 나누며 등산가는 모습은 일반적인 가정에서는 별로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겠지만, 애교가 많은 며느리와 몇 년을 같이 살다보니 우리 부부에게 있어서 이런 모습은 특별한 일이 아닌 편한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산행 출발 장소에 도착했을 때, 함께 산행을 할 기업체 CEO들이 보기에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산행을 같이 하는 것이 상당히 이질적으로 보였던 모양이었다. 어쨌든 나와 며느리는 기업인들과 같이 산행을 시작했고 함께한 기업인들과 부인들도 어린 나이의 며느리를 잘 돌봐주어서 산행도중에는 내가 며느리를 위해서 크게 신경 쓸 일은 없었다. 어쩌다가 성벽에서 사진을 한 두 번 찍은 것 외에는…

 

 며느리와 한 집에 같이 살다보니 때로는 아주 특별한 경험도 하게 된다.

 예를 들면 협회장을 하면서 해외 경제사절단으로 나가게 될 때면 며느리가 현관까지 따라 나와서 잘 다녀오시라면서 시아버지를 가볍게 백허그 해 주는 것도 아들 키울 때와는 다른 특별한 경험 중 한가지였다. 좌우지간 우리 부부는 며느리와, 며느리는 시부모와 같이 사는 게 아직까지는 별로 불편하지 않다.

 예를 들면 이런 일도 종종 있다.

 시어머니가 양푼이(알루미늄 그릇)에 밥을 비벼서 먹고 있으면 슬며시 곁에 가서 시어머니의 양푼이 밥을 함께 먹는다.

 늦가을에 내가 베란다에서 집수리를 하고 있으면 조그만 공기에 홍시를 한 개 담아 와서는 티스푼으로 시아버지와 같이 나눠먹는 것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아, 참!

 생각해보니 한두 가지 조금 불편한 게 있긴 하다.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나서 머리카락이 엉망이 된 부스스한 얼굴로 또는 속옷차림으로는 식탁에 밥 먹으러 갈 수가 없다. 항상 얼굴과 옷을 어느 정도 단정히 하고 가야 한다. 거기다가 샤워하기 전에 문을 꼭 닫아두지 않으면 잘못하다가 시아버지의 아랫도리를 며느리가 볼 수 있기에 문이 단단히 닫혀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며느리야 편하게 우릴 대하지만 우리 부부는 항상 조심을 한다. 왜냐하면 주변에서 며느리와 사이좋게 지낸다고 항상 자랑하던 분들이 어느 날 시부모와 며느리 사이에 냉랭한 분위기가 만들어 지면서 아들 집에도 거의 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며느리 욕을 하는 경우를 종종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절대로 런닝 차림으로는 거실에 내려가지 않는다. 아무리 가깝게 지낸다 할지라도 지켜야 할 기본은 지키는 게 서로에 대한 존중이고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들 내외와 아내는 결혼하고 3년 동안 아기가 생기지 않아서 은근히 걱정을 했지만, 그 걱정을 기우로 돌리면서 제작년 말에 며느리는 튼튼한 손녀를 낳았다. 돌이 지난 손녀의 커가는 모습을 보니 언제 우리 부부도 아기를 키웠던 시절이 있었던가 싶다.


 며느리와 둘이서 등산을 갔던 일은 이제는 다시 오기 힘든 먼 추억 속의 시간으로 남을 것이다. 여름이 되니 손녀가 잔디밭을 아장아장 잘도 걷는다. 그 모습을 보니, 이제는 손녀를 등에 태우고 며느리, 아들과 같이 가족 등산할 더 큰 행복의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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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와 영장산 등산


 얼마 전 아내가 환갑을 맞았다. 핑계 같지만 협회장을 맡아서 정신없이 일정에 쫓기면서 지내다 보니 아내 환갑도 깜빡하곤 챙기질 못했다. 대학산악부 후배들과 오랜만의 암벽등반을 가는 바람에 신이 나서 잔뜩 들떠 있다가 하루가 지난 후에야 아내 환갑날이 이미 지나갔음을 알게 되었다. 미안함에 대한 사과도 겸해서 아들 내외와 집 부근의 코다리찜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같이 하는 것으로 조촐하게 축하를 했다.

 식사 후 집에 들어오면서도 아내는 평생에 한번 있는 환갑도 잊어먹은 괘씸하기 짝이 없는 서방으로 인하여 서운했던 느낌을 떨쳐버리지 않았을 것 같은데, 아들 내외가 준비한 깜짝 이벤트로 인하여 그 감정을 풀었다. 오히려 크게 감동한 눈치였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부터 시작하여 우리가 자는 침실 안까지, 장미와 촛불이 어우러진 환갑축하 꽃길을 만들어 놨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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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환갑에 며느리가 만들어둔 촛불 장미 하트



 세상을 살다보면 자신에게 지금과 같은 시간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시간을 갖는 경우가 있다. 우리 부부가 지금 바로 그렇다.

 우리 부부는 당연히 자식은 결혼하면 바로 분가 시키는 것으로 생각했다.

 우리 부부가 주말마다 등산이다 여행이다 해서 밖을 나돌아 다니는 방랑자 기질이 있기 때문에, 따로 사는 아들 내외가 주말 저녁이나 찾아오면 늦은 시간에 잠시나마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지금은 매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할애비를 보려고 계단을 기어서 2층으로 올라오는 손녀의 그 귀엽고 앙증맞은 모습을 보면서, 저녁에 집에 가면 귀엽게 재롱도 떨고 때로는 말썽도 피우는 손녀와 부대끼면서 살아가고 있다.


 아들 내외와 손녀가 한집에 같이 살면서 우리 부부는 웃을 일이 참 많아졌다.

 그렇지만 “행복은 적당히 해도 유지되는 게 아니라 아들과 며느리,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에 대하여 서로가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며 따뜻한 사랑으로 대할 때 얻어지는 부산물이다.”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손녀는 빠진다. 어쩔 수 없이 나도 ‘손녀 바보’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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