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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칼럼



《사랑은 행동이다》원효봉 리지등반과 감사하는 마음
18-12-17 09:06 1,579회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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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희숙 씨 이야기

원효봉 리지등반과 감사하는 마음



“어~ 헉!”

거대한 체구를 가진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공포에 실린 낮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주변은 팽팽한 긴장에 휩싸였다. 그 공포의 저음 목소리는 우리들 눈앞에서 한 명의 산꾼이 리지(암벽으로 이루어진 능선으로 암벽등반 기술을 요함)의 물먹은 경사를 오르다가 이끼 낀 바위에서 미끄러져가면서 내는 소리였다.

 그 산꾼이 미끄러지기 시작한 지점에서 불과 3~4 미터 아래는 경사가 점점 더 급해지다가 바로 이어서 10여 미터의 수직 절벽이 연결되어 있었다. 절벽 바닥에는 큼직큼직한 바위가 제멋대로 깔려있었기 때문에 추락은 염라대왕 앞으로 직행을 의미했다.

 바로 그 장소에서 어리석은 산꾼들은 자기들의 실력을 과신하며 안전장치 없이 물먹어서 이끼 낀 미끄러운 바위를 오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2014년 늦여름 더위가 맹위를 떨치던 8월 말의 주말!

 대학 산악부 후배들과 북한산 원효-염초봉 암벽 리지를 오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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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봉 리지등반 모습



 근년에 들어 우리나라 날씨는 기상청에서 ‘이제부터 장마가 끝났다’고 발표하자마자 그동안 마른 장마였던 하늘이 어디에 그 많은 물을 감추고 있었는지 그때부터 엄청난 비를 퍼붓곤 하여 기상청 관계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곤 했는데, 그 해에도 예외 없이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다 모처럼 맑게 갠 토요일이었다.

 주말 이른 시간에 암벽의 차가운 느낌을 느껴보고 싶어서 오른 바위는 며칠 동안 줄곧 내렸던 비로 인하여 도처가 물길이 되어 젖어있었다. 특히나 원효봉의 중간쯤에 있는 슬랩(급경사의 넓은 바위)의 움푹 파인 바위에는 평소와는 다르게 골을 따라 물이 조금씩 흘러내리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눈에는 잘 띄지 않았지만 물이끼도 살짝 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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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봉 슬랩 장면



 앞서가던 우리 팀 등반대장이 서너 걸음 옮겨보더니 “어이쿠! 바위가 너무 미끄러워서 그냥 못 가겠어요.” 라면서 바로 옆의 안전지대로 나와서 추락에 대비한 보호 장비인 자일(로프)과 등반용 안전벨트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한 패거리의 산꾼들이 우리가 왔던 길을 뒤따라오더니 자일을 풀고 있는 우리를 힐끔 쳐다보곤 이런 쉬운 데서도 자일을 사용하느냐라는 비웃음 비슷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일 없이 그대로 슬랩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물이끼가 그들이라고 봐주는 게 아니었기에 올라가는 도중에 한 두 번 씩 가볍게 미끄러지면서도 히히 웃으면서 안전장치 없이 그 위험한 지점을 차례로 통과하고 있었다.

 미끄러지면서 올라가는 그 모습이 너무도 위험하게 보여서 잠시 장비 준비하던 손을 멈추고 그들이 하는 행동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중 한 친구가 슬랩 중간에서 두, 세 번 미끄러지더니 다리를 벌벌 떨면서 그 자리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참고로 이 불쌍한 산꾼이 위치한 지점은 젖어있지 않을 때는 안전장비를 쓰지 않고도 그냥 올라갈 수 있는 장소였는데 비로 인한 젖은 바위와 물이끼로 인하여 위험한 곳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꼼짝을 못하는 동료를 보고 위험을 감지한 그 팀의 한 명이 배낭에서 자일을 꺼내려고 준비를 시작했지만…

 불쌍한 그 친구는 다리를 후들들 거리다가 공포에 질려서 “어~헉~”하는 소리를 내면서 수직절벽 쪽으로 미끄러져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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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봉 염초리지 책바위에서 함께 한 산꾼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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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대 사랑바위



 위에서 그 팀의 동료들도 어! 어! 어! 하면서 어쩔 줄 몰라 하였고, 근처에 있던 우리 팀도 미끄러져가는 산꾼의 손을 잡아주다가는 같이 절벽으로 같이 휩쓸려갈까 봐 아무도 도움의 손길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불쌍한 그 친구는 내가 서 있는 바로 옆을 지나서 염라대왕을 알현하러 가고 있었다.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하나님! 부처님! 도와주세요.”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그 산꾼의 왼팔을 잡고 확 끌어당겼다.

 다행히 그 친구는 부처님과 하나님의 가호로 지옥행 급행열차에서 무사히 내릴 수 있었다.


 “에이 씨.발!”

 지옥에서 탈출한 그 인간의 제일성은 바로 그 말이었다. 이 인간은 나에게 도움을 받은 것에 대하여 속된 말로 아주 쪽팔려 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의 생명을 구해준 사람에 대하여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동료가 내려준 자일에 몸을 묶고는 그냥 올라가 버렸다.

 함께 있던 우리 팀 후배들이 그 친구들이 사라진 이후에 “저렇게 싸가지 없는 놈들이 다 있느냐”면서 “저런 놈은 그냥 떨어져서 죽도록 내버려 뒀어야 했는데…”라며 울분을 토했다.

 잠시 후 우리 팀은 자일을 사용해서 확보를 봐주면서 물이끼가 낀 위험지역을 안전하게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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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초봉 슬랩 장면



 그 지점에서 바윗길을 30여분 정도 더 올라가다 보니 아까 그 패거리들이 평평하고 넓은 바위에 앉아서 간식과 사과, 포도와 같은 과일을 꺼내서 먹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팀이 바로 옆을 지나가는데 어느 한명도 아까 도움을 줘서 고마웠다고 말하거나 과일 한쪽 먹어보라고 권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예 우리와 시선조차도 마주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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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벽 대슬랩 장면



 그들의 곁을 지나간 후 등반대장이 흥분해서 화를 냈다. 당연히 화를 낼만한 상황이었다. 내 목숨을 걸고 자기 목숨을 살렸으니, 말 한마디라도 해야 하는 게 당연했다. 사실 나도 화가 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참으면서 그 상황을 재구성하고 있었을 뿐이다.

 등반대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송 대장! 화내지 마! 당사자인 나도 화를 안 내는데 왜 화를 내? 그동안 나는 위험에 처한 사람을 여러 번 구해주었는데 지금까지 고맙다는 이야기 거의 들은 적이 없어.

 삼척 7번 국도에서 교통사고로 부상 입은 사람을 연기를 내뿜는 차에서 구출했을 때도 119 응급차가 오자마자 바로 인계하고 온 것도 바로 그런 이유였어.

 하지만 생명을 구해주는 일이었기에 그 자체로도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한번 생각해봐라. 우리 눈앞에서 미끄러져간 놈(나도 많이 화가 났었는지 ‘놈’이란 표현이 저절로 나왔다.)이 피범벅이 되어 죽었다면 우리도 아까 그 자리에서 바로 하산했을 거고 괴로움을 잊으려고 술을 얼마나 많이 마셨겠나? 그리고 나는 내가 작은 도움의 손길을 뻗쳤다면 살려낼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자괴감으로 원효봉을 등반할 때면 항상 죄책감을 느꼈을 거야. 우리가 한 생명을 살려낸 것으로 행복하자.”


 우리나라에서도 오랫동안 방영된 미국의 ‘911 긴급구조’란 TV프로그램이 있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직업 소방관이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해준 후 두 사람 사이에 평생 친구가 되어 서로 왕래를 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생명을 구해줘도 이토록 감사할 줄 모르나 싶다. 그래서 나는 위기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고 나서 119 응급차가 오면 인계하자마자 바로 그 자리를 떠난다.

 칭찬받으려고 한 일도 아니고, 위기에 빠진 분을 구해준 것만도 내가나 자신에게 크게 감사해야 할 일이란 생각과 더불어 혹시라도 원효봉 리지 사건처럼 감사할 줄도 모르고, 자기 혼자 하는 말이겠지만 욕부터 하는 인간(그 일 이후에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면 보따리 내놓으란 옛말이 왜 생겼는지 이해되었다.)을 대하면 그 사람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성남 상대원동에 있는 고객사에서 일을 끝내고 지하 주차장에서 막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순간 갑자기 SUV 승용차가 “부아앙~~” 하는 엄청나게 큰 가속 굉음을 내면서 지하주차장으로 쏜살같이 들어왔다. 그 차는 내가 서있는 장소에서 멀지않은 주차장 램프 벽을 그대로 들이 받아버렸다.

 차의 앞부분은 완전히 찌그러져 있었고 안전벨트를 안 한 운전자는 자동차 조향장치에 부딪혀서 큰 충격을 받았는지 기절 상태로 꼼짝을 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자동차에서는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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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지하 주차장 램프 벽을 들이 받고 크게 파손된 SUV 승용차



 그 상황을 근처에서 지켜봤던 나로서는 자동차에 불이 붙거나 폭발할까 봐 온몸이 떨렸지만 즉시 의식이 돌아와서 고통으로 몸을 뒤트는 운전자를 빨리 차에서 빼내야지 하는 생각만으로 뛰어가서 운전석 차문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충격으로 찌그러진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허둥지둥하며 뒤를 돌아서 조수석 문짝을 열고 그 쪽으로 운전자를 억지로 끄집어 낸 후 차에 불이 붙을까 봐 부상자를 질질 끌어서 옆으로 옮겼다.

 다행히 경유를 사용하는 SUV차량이라서인지 불은 붙지 않고 연기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그러던 중 주차장으로 차를 가지고 들어오던 분의 신고로 119 소방차가 왔기에 그분들에게 다친 운전자를 인계하고 내 차로 돌아와 보니 나의 하얀 와이셔츠에는 여기저기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주차장 들어오기 전에 무인 티켓 발매를 위해서 차가 섰다가 다시 출발하는 시점에서 운전자가 가속 패들을 브레이크로 잘못 알고 밟았는지 아니면 차의 이상에 의한 급가속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올해(2018년)로 내가 위암 수술을 받은 지 벌써 32년이 넘었다.

 간혹 그런 생각이 든다.

 그때 안 죽고 살아서 그동안 꽤 여러 명 생사의 기로에 선 생명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줄 수 있었던 것만도 나에겐 큰 축복이었다고…

 아~ 참!

 작년에 집 정원에 버려진 두 마리의 갓 태어난 길고양이도 살려내서 무사히 분양을 했었지.

 그러고 보면 길고양이 새끼를 구해 생명 사랑을 실천했을 때도 행복했었는데 하물며 인간 생명을 구한 것은 그 자체만도 얼마나 더 큰 행복인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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