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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칼럼



원효봉 리지등반과 감사하는 마음
17-04-05 14:21 2,389회 0건


“어~ 헉~”
거대한 체구를 가진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공포에 실린 낮은 목소리를 듣는 순간 주변은 팽팽한 긴장에 휩싸였다.
그 저음의 목소리는 우리들 눈앞에서 한 명의 산꾼이 리지(암벽으로 이루어진 능선으로 암벽등반 기술을 요함)의 물먹은 경사 길을 오르다가 이끼 낀 바위에 미끄러지면서 내는 소리였다. 그 산꾼이 미끄러지기 시작한 지점에서 불과 2~3미터 아래는 경사가 점점 급해지다가 바로 이어서 10여 미터의 수직 절벽이 연결되어 있었고 절벽 바닥에는 큼직큼직한 바위가 제멋대로 깔려있었기 때문에 추락의 의미는 염라대왕 앞으로 직행을 의미했다. 바로 그 장소에서 어리석은 산 꾼들은 자기들의 실력을 과신하며 안전장치 없이 물먹어서 이끼 낀 미끄러운 바위를 오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2014년 늦여름 더위가 맹위를 떨치던 8월 말의 주말!
대학 산악부 후배들과 북한산 원효 염초 리지를 올랐다.
근년에 들어 우리나라 날씨는 기상청에서 ‘이제부터 장마가 끝났다’고 발표하면 그동안 마른 장마였던 하늘이 어디에 그 많은 물을 감추고 있었는지 그때부터 엄청난 비를 퍼붓곤 하여 기상청 관계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곤 했는데 그 해에도 예외 없이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다 모처럼 맑게 갠 토요일이었다.


주말 이른 시간에 암벽의 차가운 느낌을 느껴보고 싶어서 오른 바위는 며칠 동안 줄곧 내렸던 비로 인하여 도처가 물길이 되어 젖어있었고 특히나 원효봉의 중간쯤에 있는 슬랩(급경사의 넓은 바위)의 움푹 파인 물길에는 평소와는 다르게 골을 따라 물이 조금씩 흘러내리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물이끼도 살짝 있었다. ‘앞서가던 우리 팀 등반대장이 서너 걸음 옮겨보더니 “어이쿠! 바위가 너무 미끄러워서 그냥 못 가겠어요.” 라면서 바로 옆의 안전지대로 나와서 추락에 대비한 보호 장비인 자일(로프)과 등반용 안전벨트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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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때 한 패거리의 산꾼들이 우리가 왔던 길을 뒤따라 오더니 자일을 풀고 있는 우리를 힐끔 쳐다보곤 이런 쉬운 데서도 자일을 사용하느냐라는 비웃음 비슷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일 없이 그대로 슬랩을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물이끼가 그들이라고 봐주는 게 아니었기에 올라가는 도중에 한, 두 번 씩 가볍게 미끄러지면서도 히히 웃으면서 안전장치 없이 그 위험한 지점을 통과하고 있었다.
 미끄러지면서 올라가는 그 모습이 너무도 위험하게 보여서 잠시 장비 준비하던 손을 멈추고 그들이 하는 행동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중 한 친구가 오르다가 중간에 두, 세 번 미끄러지더니 다리를 벌벌 떨면서 그 자리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참고로 이 불쌍한 산꾼이 위치한 지점은 경사가 50도 정도 되어서 젖어있지 않을 때는 안전장비를 쓰지 않고도 그냥 올라갈 수 있는 장소였는데 비로 인한 젖은 바위와 물이끼로 인하여 위험한 곳으로 변해있었다.
꼼짝을 못하는 동료를 보고 위험을 감지한 그 팀의 한 명이 배낭에서 자일을 꺼내려고 준비를 시작했지만.....
불쌍한 친구는 다리를 후들들 거리다가 공포에 질려서 어~헉 하는 짐승우는 소리를 내면서  수직절벽 쪽으로 미끄러져 내리기 시작했다.


위에서 그 팀의 동료들도 어 어 어~ 하면서 어쩔 줄 몰라 하였고 근처에 있던 우리 팀도 미끄러져가는 산꾼의 손을 잡아주다가는 같이 절벽으로 같이 휩쓸려갈까 봐 아무도 도움의 손길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불쌍한 그 친구는 내가 서 있는 바로 옆을 지나서 염라대왕을 알현하러 가고 있었다.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하나님! 부처님! 도와주세요.”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그 산꾼의 왼팔을 잡고 확 끌어당겼다. 다행히 그 친구는 부처님과 하나님의 가호로 지옥행 급행열차에서 무사히 내릴 수 있었다.

지옥에서 탈출한 그 인간의 제일성은 “에이 X발!”
이 인간은 나에게 도움을 받은 것에 대하여 속된 말로 아주 쪽팔려 하는 것 같았다.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의 생명을 구해줬는데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동료가 내려준 자일에 몸을 묶고는 그냥 올라가 버렸다. 함께 있던 우리 팀 후배들이 그 친구들이 사라진 이후에 “저렇게 싸가지 없는 놈들이 다 있느냐?”면서 “저런 놈들은 그냥 떨어지도록 내버려 뒀어야 했는데...”라며 울분을 토했다. 잠시 후 우리 팀은 자일을 사용해서 물이끼가 낀 위험지역을 안전하게 통과했다.

그 지점에서 바윗길을 30여분 정도 더 올라가다보니 아까 그 패거리들이 평평하고 넓은 바위에 앉아서 간식과 사과, 포도와 같은 과일을 꺼내서 먹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팀이 바로 옆을 지나가는데 어느 한 명도 아까 도움을 줘서 고마웠다 말하거나 과일 한쪽 먹어보라고 권하는 인간이 없었고 아예 우리와 시선조차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 곁을 지나간 후 흥분해서 화를 내는 등반대장에게 내가 말했다.
“이 친구야! 화내지 마! 당사자인 나도 화를 안 내는데 왜 화를 내? 그동안 나는 위험에 처한 사람을 여러 번 구해주었는데 지금까지 고맙다는 이야기 한번 못 들었어.” 삼척 7번 국도에서 교통사고 나서 부상 입은 사람을 연기를 내뿜는 차에서 구출했을 때도 119차량이 오자마자 바로 인계하고 온 것도 바로 그런 이유였어.
생명을 구해주는 일이었기에 그 자체로도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한번 생각해봐라. 우리 눈앞에서 미끄러져간 놈이 피범벅이 되어 죽었다면 우리도 아까 그 자리에서 바로 하산했을 거고 괴로움을 잊으려고 술을 얼마나 많이 마셨겠나? 그리고 나는 내가 작은 도움의 손길을 뻗쳤다면 살려낼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자괴감으로 원효봉을 생각할 때면 항상 죄책감을 느꼈을 거야. 우리가 한 생명을 살려낸 것으로 행복하자. “


우리나라에서도 오랫동안 방영된 미국의 911긴급사항이란 TV프로그램이 있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직업적인 소방관이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해준 후 감사의 뜻으로 평생 친구가 되어 서로 왕래를 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생명을 구해줘도 이토록 감사할 줄 모르나 싶다.  그래서 나는 위기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고 나서도 119 차량이 오는 경우에는 바로 그 자리를 피해버린다. 칭찬받으려고 한 일도 아니고 위기에 빠진 분을 구해준 것만 가지고도 나에겐 크게 감사할일이란 생각과 혹시라도 원효봉 리지 사건처럼 감사할 줄 모르고 자기 혼자 하는 말이겠지만 욕부터 하는 인간을 보면 그 사람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고객사에서 일을 끝내고 지하 주차장에서 막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순간 갑자기 부아앙~~ 엄청 큰 자동차의 가속 굉음을 들리면서 한 차가 지하주차장으로 순간 쏜살같이 들어왔다. 그 차는 내가 서있는 장소에서 멀지않은 주차장 램프 벽을 들이 받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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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의 앞부분은 완전히 찌그러져 있었고 안전벨트를 안 한 운전자는 자동차 조향장치에 부딪혀서 큰 충격을 받았는지 기절해서 꼼짝을 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자동차에서는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상황을 불과 3~4미터 앞에서 지켜보던 나로서는 자동차에 불이 붙거나 폭발할까 봐 온몸이 떨렸지만 의식이 들어서 고통으로 몸을 뒤트는 운전자를 빨리 차에서 빼내야지 하는 생각만으로 운전석 차 문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충격으로 찌그러진 문은 열리지 않았다. 허둥지둥하며 뒤를 돌아서 조수석 문짝을 열고 그쪽으로 운전자를 간신히 끄집어 낸 후차에 불이 붙을까 봐 부상자를 질질 끌어서 옆으로 옮겼다. 다행히 경유를 사용하는 SUV 이라서 불은 붙지 않고 연기는 조금씩 잦아들었다.  그러던 중 주차장으로 차를 가지고 들어오던 분의 신고로 119 소방차가 왔기에 그분들에게 다친 운전자를 인계하고 내 차로 돌아와 보니 나의 하얀 와이셔츠에는 온통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주차장 들어오기 전에 무인 티켓 발매를 위해서 차가 섰다가 다시 출발하는 시점에서 운전자가 가속 패들을 브레이크로 잘못 알고 밟았는지 아니면 차의 이상에 의한 급가속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올해(2017년)로 내가 위암 수술을 받은 지 벌써 30년이 넘었다.
간혹 그런 생각이 든다.
그때 안 죽고 살아서 그동안 꽤 여러 명의 생사의 기로에 선 생명에게 도움의 손길을 줄 수 있었던 것만도 나에겐 큰 축복이었다고 ...


아~ 참!
작년에 버려진 두 마리의 갓 태어난 고양이도 살려내서 무사히 무료 분양을 했었지.
그러고 보면 길 고양이 새끼의 생명 사랑을 실천했을 때도 행복했었는데 인간 생명을 구한 것은 그 자체만도 얼마나 더 큰 행복인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만 남는다.



[이 게시물은 여의시스템님에 의해 2017-05-25 08:54:28 이벤트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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